- 한국교회 선교의 회고와 전망/ GMS선교정책2
-
    
-
2012.07.18 22:12 입력 | 2012.07.20 00:29 수정
제34회 전국장로수련회 특강
한국교회 선교의 회고와 전망/ GMS선교정책2
96회 총회 후 합동교단의 최대잇슈는 GMS문제였다. 지난 10여개월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으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다시 제97회 총회의 최대 잇슈로 부상될 전망이다. 이런 싯점에서 장로연합회에서조차도 GMS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려는 의도에서 제34회 전국전국장로수련회에서 [한국교회 선교의 회고와 전망/GMS 선교정책]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가졌다. 이에 본보는 선교지향적인 목회와 섬김의 리더십으로 전국교회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이규왕 목사의 특강 전문을 실어 교단선교의 방향성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 특강이 GMS 문제를 해결하는 지침과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주 -
[강사 프로필]
이규왕 목사 명지대학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총신 RTS 목회학 박사, 수원신학교 학장 역임, 세계신학원 원장(현), 세계선교협의회 이사(현), 수원신학교 이사장(현), 수원제일교회 담임(현)
2) 한국인의 손에 의해 번역된 최초의 한글 성경
영국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선교회는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가 헛되지 않기 맥킨타이어(John MacIintyre, 1837-1905)와 로스(John Ross, 1842~1915)와 헌트 의료 선교사를 1872년에 파송 받아 중국 요녕성 파송하여 심양에서 선교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스 선교사는 1874년 고려문을 방문하여 이응찬을 만나게 되고, 1876년에 이응찬을 비롯한 백홍준, 이성화, 김진기 등이 맥킨타이어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세례를 받게 되었는가 하면 백홍준의 아버지는 그 당시 만주를 왔다 갔다 하면서 물건을 파는 상인이었는데 그 당시 만주에서 사역했던 로스선교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접근 했지만 그 사람들의 관심은 복음에 있지 않았고, 영국산 면세품인 양목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로스 선교사가 묵고 있었던 여관으로 한 50대 남자 상인이 찾아왔습니다. 로스 선교사는 그에게서 한국인의 발음법을 배웠고, 그 50대 상인에게 로스 선교사는 한문 신약 성경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상인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아들과 그 친구들에게 주어서 읽게 했는데 그 성경을 읽었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를 받았던 백홍준, 이성화, 김진기, 이응찬이었습니다.
그 후 1879년에 서상륜이, 1883년에 김청송이 존 로스에게 세례를 받았고, 그 뒤에 이성하(李成夏)ㆍ이응찬(李應贊)ㆍ백홍준(白鴻俊)과 로스 선교사와 함께 최초로 신약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쪽 복음 형태로 1882년에 요한복음과 누가복음, 1884년에는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1885년에는 로마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1887년에는 ‘예수셩교전서’ 즉, 신약이 완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이것은 중국어 성경을 토대로 하여 번역한 것으로 성경 번역뿐 아니라 식자와 인쇄도 모두 그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고 성경을 번역하고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에 반포하는 것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오기 3년 전의 일로, 민족교회 성립의 기초를 이룬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한글 성경을 가리켜 흔히 ‘로스역(Ross)’이라 하지만 로스 선교사가 번역한 성경이 아니라 주도한 것으로 실제적으로는 자국인 조선인에 의해 번역된 한글 성경이라는 점에서 세계 선교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특별한 사건입니다.
3) 한국인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한국 교회
서상륜(徐相崙, 1849~1925)은 본래 양반 가문의 장남으로 한문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친을 따라 한문공부에 능할 뿐 아니라 중국어에도 능숙하였다. 그래서 고려문을 넘나들며 홍삼 장사를 하던 중 뜻하지 않게 장티푸스에 전염되어 사경을 헤매자 이때 이미 기독교를 접한 이응찬이 그를 매킨타이어에게 안내하였습니다.
장티부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서상륜은 헌터 의사의 치료를 받고 병이 낫자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몇 달 후 매킨타이어 선교사와 같은 선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로스(Ross, J. 羅約翰)를 만나 전도를 받고 신자가 되어 세례를 받고 그의 한국어 어학선생이 되어 성경 번역에 참여하기 되었습니다. 그는 흑룡강 성에서 사는 조선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번역한 서상륜은 또 하나의 사명을 안고 그가 번역한 누가복음을 안고 압록강을 건너 고향 의주로 돌아오는 도중에 압록강 국경 관리들에게 적발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성서 반입이 철저하게 금지되었기 때문에 의주감옥에 수감되었으나 고향 친구인 의주부집사이며 교인이었던 김효순(金孝順)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고향인 의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10권의 한글 성경을 챙겨 고향에 돌아와 전도하던 중 위기를 느끼면서 동생 서경조와 함께 당숙이 살고 있는 황해도 장연의 소래(송천松泉)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가슴 품속에 몰래 숨겨온 성경을 가지고 외가 친척과 인근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도가 점차 활기를 띠면서 가정집 예배처소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로써 1883년 한국 최초로 외부의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소래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소래교회는 점차 성장하여 188년에는 13명, 1885년에는 20명, 1886년에는 70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의 숫자가 많아지자 서상륜은 중국에 있는 로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부탁하였으나 언더우드 선교사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서상륜은 성도들을 데리고 서울 정동까지 가서 세례를 받았는데 후에 새문안 교회를 설립할 때 함께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1885년 4월5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최초 선교사로 입국하면서 조선 땅에도 본격적인 선교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는데 소래교회는 그 이전에 이미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소래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할 때에도 언더우드 선교사가 건축자금을 미국에 가서 모금하여 지원하겠다고 하였으나, 서상륜을 비롯한 소래교회 교인들은 “우리가 우리 예배당을 세우는데 외국인의 원조를 받아서 하는 것은 본의에도 어긋나며, 후세에 전하는데도 떳떳하지 못하다”고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감격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 뜻을 존중하면서 서양의 램프 등 5개를 교회에 기증하였는데 그 불빛이 얼마나 밝고 환했는지 온 동리를 환하게 밝혔다고 합니다. 소래교회는 한국최초의 예배당인 동시에 외국의 원조 없이 자생적으로 세운교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큰 것입니다.
1887년 9월27일 언더우드에 의하여 서울에 설립된 최초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창립될 때 참여한 14명은 서상륜이 전도한 소래교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서상륜의 동상 서경조가 1901년 평양신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한국 최초의 7명의 목사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925년 12월16일 서상륜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아 대한 예수교 장로교총회장으로 치러졌고, 동생 서경조는 한국교회 최초목사7인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처럼 선교사들의 복음을 듣기 이전에 벌써 성경책을 읽고 복음을 깨달아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는데 자기 스스로가 성경을 읽고 복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한국 선교 역사에 기억할 만한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요한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이처럼 한국 교회 선교는 후일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자기는 씨를 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뿌려진 씨의 열매를 추수하러 왔다’고 말한 것처럼 선교사 들어오기 전에 먼저 한국인의 손으로 이미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세계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나라입니다.
고경태 기자 ktyhbg@hanmail.net
|
- [발행인칼럼] 코로나 확진의 위기, 법
- 예장합동 경상노회 관련 가처분 4건 결
- [CFC교회법TV] 법원, "장로는 교회 대
- [발행인칼럼] 귀전을 울린 헌법학자의
- [CFC소식] 서울고등검찰청, 기독신문측
-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중단 촉구 텐트
- [CFC특집] 송삼용 목사, "존 오웬, 목
- [CFC특강] 송삼용 목사, "개혁주의 영
- [CFC긴급] 황교안 前총리 호소, "부정
- [특별기고] 상비부인 규칙부가 총회를
- [긴급속보] 총신대 총학생회 주도로 천
- [발행인칼럼] 왜 소강석 목사에게 집착
- 서헌제 박사, "교회법신문은 한국교회
- 충남노회(정기회측), "대법원 판결 이
- [CFC송구영신] "지난 고통은 역사의 뒤
- [포토뉴스] 통영시 기독교연합회, 성경
- [발행인칼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 [CFC성탄캐롤] "코로나 아픔을 싸메주
- [포토뉴스] 성탄시즌, 세상에 빛을 전
- [발행인칼럼] 법학도와 신학도
- [송삼용의 정론직설] 대구노회 이럴 순
- [송삼용의 법리검토] 몰래한 녹음, 합
- 대구지방법원, “박00 목사는 여성도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