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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영성을 회복하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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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지향하는 개혁주의 신학가 십자가 영성을 보급 확산하려는 취지에서 십자가 영성을 외치며 참회록 형식으로 쓴 송삼용 목사의 [십자가 영성을 회복하라](넥서스크로스)를 연재
2017.04.28 13:08 입력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신구약 성경의 주제도 십자가다. 기독교인의 신앙의 핵심도 십자가다. 십자가는 복음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기독교는 십자가를 잃어버린 듯하다. 교회에 십자가가 사라진지 오래고, 십자가 중심의 신앙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현대 교회는 십자가 대신 인본주의를 선택했고, 세속주의를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목회도 십자가보다는 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자회상이요, 현대 교회의 실상이다. 

 

이에 본보는 십자가 영성을 외치면서 참회록 형식으로 쓴 송삼용 목사의 [십자가 영성을 회복하라](넥서스크로스)를 전문을 연재하려고 한다. 저자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개혁주의 영성신학]을 8년간 강의했으며, [영성의 거장을 만나다](넥서스크로스)(2010년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신학부문 우수상 수상] 외 영성 관련 저서 34권을 남겼다. -편집자 주-

 

<들어가면서>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를 그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후에 차지할 역작의 영광을 기대하면서 군중들을 한사람씩 그려나갔습니다. 

 

온 마음을 쏟아서 여러 군중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정신을 집중하여 사력을 다해 붓을 놀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군중들 중에 한 사람의 얼굴은 자신의 얼굴로 대신했습니다. 바로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이 군중들 가운데 서 있구나! 그럼 내가 그리스도를 십자가 못박았단 말인가 ---? ---? 그래, 나도 그 일에 동참했어. 나도 ---”

 

그 순간 렘브란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두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잠시 후 뜨거운 눈물이 그의 두 뺨을 적셨습니다. 이어서 렘브란트는 완성된 그림을 붙들고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가슴 밑바닥에서 '쿵쿵’ 거리며 울려오는 망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어서 십자가 양편에서 대못을 내리치는 소리, 비명을 지르며 고통하는 예수님의 울부짖음, 그리고 군중들의 함성 등이 뒤섞여서 렘브란트의 귓전에 울려오자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음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맞아, 바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어 ---. 나는 공범자야!"

 

입속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끝나자마자 대성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지식으로만 알았던 것을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십자가를 예술의 도구로만 다루었던 것도 통회했습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 그리스도 없는 믿음을 자백했습니다.

 

그제서야 렘브란트는 자신이 그려놓은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몸을 찢기고, 물과 피를 쏟아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렘브란트의 나이 27살, 청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후 렘브란트는 평생 동안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공모한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여러 작품 속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가령, <빌라도의 법정>에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치던 유대 군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순교자 스데반>에서는 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지는 성난 군중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 <돌아온 탕자>에는 자신의 얼굴을 탕자의 모습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가 일생 동안 그린 2천여점의 작품 중에서 1천여점이 성경에 바탕을 둘 정도였으니 그날의 십자가 체험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셈입니다. 렘브란트가 활동했던 17세기 무렵에는 대분분의 사람들이 성경에 관심을 두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성경을 연구해서 남은 여생 동안 내내 성경을 주제로 한 그림을 수없이 그려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서 뗀 적이 없을 정도로 성경을 지극히 사랑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미술 역사 가운데서 성경 전권을 그린 유일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가장 특이한 점은 그가 성경을 통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려고 부단히 애썼다는 점입니다. 그러다가 55살 때에는 바울처럼 오직 복음을 위해서 살고자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사도바울로서의 자화상>(1661)이란 유명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경험한 십자가의 은총이 그를 그토록 뜨거운 십자가의 사람으로 바꿔준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과 신비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요, 신비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이란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골2:15)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 사람을 변화시켜 주는 겁니다. 십자가에는 다이나마이트보다 더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임하면 오랜 습관이 박살납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고질적인 병폐가 무너집니다. 세상적인 관행이나 관습도 사라집니다. 어떤 죄악이라도 말끔하게 청산됩니다. 모든 악행도 말끔하게 근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체험하면 누구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 엎드리기만 하면 렘브란트처럼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총이 임하기만 하면 인생이 바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공장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영혼을 소생시켜 주는 원기요,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생수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교회든 가정이든 십자가가 세워지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생명의 싹이 움터 오릅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인류 문화와 문명을 주도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로 변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세워진 나라마다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이조 말기 조선의 미래를 바꾼 것도 십자가였습니다. 

 

조선 땅에 십자가가 세워진 이후 교육, 의료,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신문명의 기초석이 바로 십자가였던 겁니다. 세계 곳곳에 십자가의 빛으로 새생명을 얻은 사람, 십자가의 은혜로 축복을 누린 사람, 십자가의 능력으로 변화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십자가 안에서 당신도 그런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십자가 자체가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은 아침 시간에 길거리에서 전도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담배를 물고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재빨리 전도지와 주보, 그리고 화장지를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하늘양식교회 목사입니다. 예수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고개를 돌리며 귀찮다는 듯이 몇 차례나 담배재를 길거리에 뿌려댔습니다. 나는 겸연쩍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참고 서서 그 청년을 다시 바라봤습니다. 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가슴에 길다란 십자가 목걸이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 ---! 저 멋진 십자가를 짊어진 청년이 십자가를 배척하다니!!! 화려한 십자가가 주님의 십자가를 배척하는구나~~~~.’

 

우리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십자가가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를 짓밟고 있는 실정입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장식품에 불과한 생명없는 십자가가 세상에 널려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목거리를 달고 다닌다고해서 거기에 생명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금으로 만든 십자가 귀고리를 붙였다고 은혜가 쏟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십자가가 교회당 위에 세워져 있지만 십자가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요 ----? 

 

화려한 십자가를 세운다고 저절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강단에 십자가를 달았다고 말씀의 권능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 십자가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나무 조각품에 불과합니다.

 

내가 말하는 십자가는 그런 조각품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버려진 영혼을 건져내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보혈이 묻은 구속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영원한 세계를 여는 열쇠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입장권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요약입니다. 십자가는 단단한 믿음의 기초요, 구원의 표지판입니다. 십자가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쏟아내는 샘터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봅시다. 십자가는 영원토록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구속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나의 죄를 위해서 물과 피를 쏟아내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고통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사망의 길을 가고 있는 죄인들을 향해 절규하시며 돌아오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피맺힌 사랑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내가 짊어져야할 죽음을 대신 져주신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열매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요, 위대한 구속의 드라마입니다. 십자가는 은혜의 절정이요, 사랑의 최고봉입니다. 바로 그 십자가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심장에 피묻은 십자가를!

 

그러기에 당신의 심장에 십자가를 세워야 합니다. 가슴에 피묻은 십자가를 그려야 합니다. 마음속에 붉은 피로 얼룩진 십자가를 품어야 합니다. 당신의 신앙은 십자가 중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삶이 십자가 안에 있어야 합니다. 기도에 십자가의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찬양에 십자가의 감격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헌금에 십자가의 은혜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가 당신 삶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생각 속에 항상 십자가가 있어야 하고, 마음 속에 언제나 십자가가 그려져 있어야 합니다. 말에서도 자연스럽게 십자가가 터져 나와야 합니다. 

 

눈을 감으면 뚝뚝 떨어지는 십자가의 핏방울을 보아야 합니다. 엎드리면 주님의 가슴을 적신 선명한 핏자국을 확인해야 합니다. 손등에서 터져 나온 핏방울을 느껴야 합니다. 얼굴에 흐르는 핏자국을 만져봐야 합니다. 날마다 십자가 보혈의 강수에 깊숙이 젖어야 합니다. 십자가 중심의 신앙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토마스 아 캠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십자가 중심의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대가 밖으로 도망쳐도 거기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서 십자가를 볼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밑으로 파고들어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십자가 중심성은 구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죄로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창세기에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3:1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기 위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려는 구속 드라마의 각본을 수 천년 전에 미리 준비하신 겁니다. 성경은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서입니다. 구약에서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증거하고, 신약에서는 이미 오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담긴 십자가를 보신 것이지요. 그러기에 공생애 동안 내내 십자가를 마음에 두고 사역하시다가 마침내 죽음의 십자가를 지신 겁니다.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의 삶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바울도 십자가가 그의 신앙과 신학의 핵심이었습니다. 바울을 이어 4천여권나 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겨서 정통 신학을 집대성해 준 어거스틴도 십자가를 강조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십자가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랑을 세상에 전한 설교단이었다."

 

어거스틴 이후 종교 개혁자들 역시 끊임없이 십자가를 외쳤습니다. 심지어 루터는 십자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였습니다.

 

"성경을 짜면 피가 나온다. 구약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인 짐승의 피가 흐르고, 신약에는 예수님의 피가 흐른다."

  

▲ 루터의 고향 아이스레벤에 있는 루터의 동상    

 

루터의 신학은 십자가 신학이었습니다. 그의 신앙도 십자가 신앙이었습니다. 루터는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라고 외칠 정도로 십자가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당시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난 카톨릭을 향해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은총”을 외치면서 종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십자가 신앙만이 완전한 신앙이요, 십자가 신학만이 완전한 신학이었습니다. 

 

루터에게, 십자가는 성경의 요약이요, 신앙의 핵심이였습니다. 그에게는 십자가만이 만물의 시금석이 되었습니다.

 

장로교 신학을 체계화시켜 전수해 준 칼빈도 십자가의 신앙을 강조했습니다. 칼빈은 “갑작스러운 회개”를 경험한 후 심령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시편 주석 서문에서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너무 완고하게 이 로마교의 미신에 몸과 마음을 바쳤기 때문에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란 실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갑작스런 회개를 통해서 마음이 완악하기로는 누구보다도 더 강하였던 나의 모든 생애를 정복하여 복음을 가르치는 마음이 불붙게 하였다.  


 

 

칼빈이 십자가를 통해서 뜨거운 회개를 경험한 것이지요. 그후 그의 신앙과 신학의 중심에는 항상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원래 칼빈의 신학과 그가 추구했던 교회 개혁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은 일생동안 칼빈이 목숨을 걸고 펼쳤던 사상이었습니다. 

 

칼빈에 의하면,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할 것이지 성도들이 누려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성도들은 자기를 부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자기 부정의 삶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었습니다. 곧 성도들은 십자가의 힘으로 시련과 고난을 감당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이 칼빈의 십자가 신학의 핵심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뿌리가 십자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칼빈이 평생 동안 주창했던 경건의 기초도 십자가였습니다. 그가 추구한 성화의 출발선도 십자가였습니다. 그의 신앙과 신학의 최고 정점은 항상 십자가였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도 드러난다. 왜냐하면 한 장엄한 극장에서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선하심이 온 세상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비추신다." 

 

그러나 십자가에서보다 더 밝게 비친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그 십자가에서 만물을 깜짝 놀라게 하는 변화가 있었고, 모든 죄가 완전히 말소되었다.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이 회복되었으니 십자가 안에서 온 세상이 새로워지고 모든 것이 훌륭한 질서로 회복되었다.

 

오늘날 개신교도들이 그토록 흠모하는 위대한 개혁자들이 그런 식으로 십자가를 강조한 겁니다. 개혁자들이 남겨둔 보배로운 유산은 분명 십자가의 신학이요, 십자가의 신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개신교도들은 십자가를 잃어버렸습니다. 신앙에 십자가가 사라졌고, 신학에도 십자가가 상실된 것 같습니다. 각 도시마다 교회를 알리는 십자가가 수없이 많이 세워졌지만 정작 십자가의 구속과 보혈은 희미할 뿐입니다. 

 

개혁자들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초자도 십자가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학자들도 생명력 넘치는 십자가의 신학을 전수해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에게도 십자가는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될 뿐 목양과 설교의 뿌리가 되지 못한 지 오래인 듯합니다. 

 

마치 개혁자들이 추구한 십자가라는 알맹이를 놓쳐버린 채 불순물로 포장된 개혁신학이라는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겪입니다<계속>

 

송삼용 목사/ 하늘양식교회, 크리스천포커스 발행인 



홍성복 객원기자 hongsb06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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